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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개발일지
버려지는 것들은 어디로 갈까. 하나의 완전체에서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작은 조각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분명 하나의 완전체일 때 그것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존재 이유를 가진 전체였다. 하지만 쓰고 남겨져 버려지면, 더 이상 의미도, 지향점도 남아 있지 않은 찌끄레기가 되어 버린다. 이런 작은 조각들은 더 이상 의미 없이 버려지는데, 만약 그것들을 모아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하나의 완전체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다시 만들어진 완전체가 과연 이전의 완전체와 같을 수 있을까? 새로운 존재 이유와 달라진 정체성을 가진 그것을 동일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쉽게 버려지는 것들에 애정을 두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버려지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버려지..
영화의 끝을 알리는 장면이 올라간다.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이 악역을 물리치며 해피엔딩.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결말의 영화가 있는가 하면, 독자들에게 다음을 연상하게 하는 끝맺음의 영화도 있다. 이른바 열린 결말. 영화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독자의 상상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주인공이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가슴속 답답함을 남긴 채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런 열린 결말은 모호하다. 나는 이런 모호함이 좋다. 좋고 싫음에 관해서 확신이 없는 나에게 있어 한 가지 확실히 할 수 있는 건, 이런 모호함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너는 주관이 없니? 너 하고 싶은 게 없어? 너 원하는 건 없니?" 등 어떤 질문을 받을 때, 나의 대답은 항상 모호하다. “응, 좋은 것 같아.” “나쁘진 않..
화면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앞에 놓인 화면을 바라보다가 문득 검은색 화면에 비추어진 얼굴이 보인다. 초점이 맞추어지며 알게 된 사실은, 표정이 없다는 것이다. 일자로 그어진 눈썬과 일자로 그어진 입술 뚱한 표정의 얼굴이 보인다. 무방비 상태에서 들여다본 모습이 낯설어 급히 시선을 피한다. 항상 저런 표정이었지.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내 모습을 직시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결같은 표정은 이런 표정이었다. 적응되지 않는 얼굴의 표정.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은 검은 화면에 비친 모습과 같다. 일직선의 눈과 입술,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거울에 비추어진 또 다른 자신과 초점을 맞춘다. 문득 아까 그 장소에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어떤 ..
어디로 떨어질지 모른다. 방향도, 목적도 없다. 그저 위에서 아래로, 중력을 거스를 수 없기에 낙하한다. 떨어지기 전에 자신이 닿을 곳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선택은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다.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 나의 자리를 정하는 건 중력과 가벼운 나를 실어 나르는 바람뿐이다. 확실한 목표와 방향,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아래가 아닌 위로 올라가기를 희망한다. 아래보다 위가 더 낫다고 믿는다. 하지만 위로 갈수록 중력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올라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다. 반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일이다. 어떠한 목표와 방향, 목적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몸을 아래로 맡긴다. 중력의 힘에 이끌려 계속 아래로 떨어진다. 그 끝은 어디인가? 어떤..
첫 번째 의심과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정말로 할 거야? 하고 싶은 게 맞아? 할 수는 있어? 그래서 그거 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뭘 하고 싶은 건데?두 번째 의심과 생각이 다음을 채운다. 진심으로 할 건가? 간절히 원하는 게 맞을까?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이걸 감히 시도해도 되는 건가? 정말 가능하기는 한 건가? 왜 모든 의심과 생각은 끝은 의문으로 끝나는 걸까? 할 수 있어. 하고 싶어.라는 의지를 가진 단어로 끝나면 좋을 텐데. 하나의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아니라는 이유를 찾고 있다. 실패하기를 바라는, 이미 실패를 짐작하기에 시작부터 포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져 간다. 조그마한 의심과 생각이 커져서 이제는 콩알만 해진다. 다시 한번 물음에 이번에는 주먹만 해진다. 다시 물음에 이..
“이거 재밌지 않아?”“응 재미있다.”“……, 너는 말에 영혼이 없어” 익숙한 대화 속 이 반응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여기서 상대방이 말하는 “영혼이 없다”는 건 단순하다. 재밌다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감정의 공유. 상대방에게 자신이 느꼈던 감정에 대한 동의를 구하거나, 내가 느꼈던 감정을 가지고 다르게 표현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표현이 서툰 나에게는 “영혼이 없다”라는 단순한 말이 내 치부를 들킨 것과 같은 말로써 들려온다. 이후에는 조금 더 감정을 담아야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감정을 담아야 하는 거지. 감정이란 뭐지. 기쁘다. 화가 난다. 슬프다. 짜증 난다. 외롭다. 재밌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
옷장 문을 열어두는 것을 좋아한다. 5평 남짓한 조그마한 방에 옵션으로 설치된 붙박이 옷장. 옷장안에 들어가 있는 옷들의 정돈감을 보는 것이 좋다. 아니 단순히 옷들의 정돈감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방의 시각에서 옷장 문이 열려 있을때, 방을 포함하여, 옷장안에 있는 것이 모두 어울러져 정돈된 느낌을 주는 그 상태를 좋아한다. 머지않아 계절이 바뀐다.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더웠던 여름과 달리 추운 겨울은 두 계절의 온도의 차이의 크기 만큼 옷에도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옷장에는 지금까지 여름을 견디기 위한 옷들로 채워져 있었다. 세로가 유난히 긴 직사각형, 중간에는 위아래를 구분하기 위한 가로 크기 만큼의 넓직한 나무 선반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경계를 기준으로 한 층..
음식을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한다는 건 단순히 생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하는 활동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단순히 위아래 운동을 해서 입을 움직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저작운동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나에게 그런 날이었고, 어딘가 추위를 피할 겸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행위를 하고 싶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밖으로 나서는 순간, 든 생각은 이 추위를 피해 어딘가든 도피하고 싶다는 기분이었다. 바닥에는 계절을 알리듯 반년 동안 나무에 붙어 있던 잎들이 색깔이 변한 채 나뒹굴어져 있었다.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추위를 견디기 위해 무장한 기사 같은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기사처럼 몸의 구석구석을 보호했지만, 불..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질서와 안정감이 느껴졌고, 다른 한쪽은 혼란스럽고 불편해 보였다. 그들 사이에는 벽이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단단한 벽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은 옷으로 이루어진 가짜 벽임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옷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셔츠, 재킷, 드레스,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옷걸이까지. 마치 사람들을 가르기 위해 만들어진 분명한 경계 같았다. 나는 벽 앞에서 멈춰 섰다.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과 두려움이 뒤섞였다. 손을 뻗어 가장 가까이에 걸린 파란색 옷을 붙잡았다. 천천히 옷을 옆으로 밀어내며 벽 속으로 들어갔다. 빽빽한 옷들이 나를 막으려는 듯 쏟아질 것 같았다.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벽을 ..
어둡고 좁은 방 안, 서늘함이 느껴진다. 빛이 유일하게 들어올 수 있는 벽 한쪽은 블라인드로 가려져,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빛줄기를 차단하고 있다.“오늘의 최저 기온은 영하 1도입니다. 외출 시 따뜻하게 옷을 입어주세요.”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또렷한 음성이 막 깨어나 몸을 추스르는 내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오늘은 춥다. 만약 외출을 해야 한다면 따뜻하게 입어야 한다. 단순한 사실들을 확인하며, 이불속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내 몸을 억지로 일으킨다. 화장실 문을 열고 거울 앞에 선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탓인지 화장실엔 냉기가 맴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마지막으로 외출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틀 전인가, 일주일 전인가? 알 수 없다. 밖에 나가..